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
고대 로마 황제(재위 306~337).
별칭 : 콘스탄티누스 대제, 정식 명칭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국적 : 고대 로마
활동분야 : 정치
정식 명칭은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 또는 콘스탄틴 1세라고도 불린다. 콘스탄티우스 1세와 헬레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제 퇴위 후 로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로마 제국을 재통일시켰으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인한 황제로서도 유명하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따라 갈레리우스의 페르시아 원정에 참가하였다. 306년 아버지가 죽자 황제에 추대되었으나, 정통파 황제를 자칭하고 로마시를 근거지로 삼고 있던 막센티우스를 꺾어야 했고 312년에야 정식으로 황제 지위를 얻었다. 314년부터 로마 제국 동부를 차지한 황제 리키니우스와 대립하였으나, 323년 고트인(人)의 침입을 막아낸 후 리키니우스를 격파, 제국을 통일하여 단독 지배자가 되었다.
원래 그는 태양신을 숭배하였으나 그리스도교에 깊이 경도하여 그 자신도 그리스도교가 되어 313년 밀라노에서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勅令)을 공포,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당시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그리스도교 박해를 중지시키고 교회의 사법권, 재산권 등을 우대하였다. 또한 북아프리카 도나투스파의 분파(分派) 문제도 조정하였으며, 325년 니케아에서 종교회의를 개회하는 등 교회 내의 분쟁, 교리(敎理) 논쟁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한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정한 통치 방식을 계승 발전시켜, 문무(文武) 관직의 기능을 완전히 분리하였고, 황제고문회의의 권한을 강화하여 중요한 정치에 관여시켰으며, 황제를 정상으로 하는 계급적 관로제도를 완비하였다. 또한 상비군 제도와 변경의 둔전병(屯田兵) 제도에 의거하여 군제를 정비하였으며, 사르마티아인(人)과 게르만인을 변경지방으로 이주시킴으로써 야만족의 침입에 대처하였다.
행정적으로는 관료와 군대의 유지, 오리엔트식의 궁정조직과 의례(儀禮)형식의 채용, 대규모 건축사업 등에 대한 지출이 증대하였기 때문에 각종 세금제도(금을 납부하는 형식으로)를 신설하였고, 솔리두스 금화본위(金貨本位)로 화폐제도를 정비하게 되었다. 한편 이교적 색채를 불식한 그리스도교적인 도시로서 비잔티움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라고 명명하였다(330). 그는 군인, 통치자, 입법자로서 제1급의 인물로 꼽히고,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더불어 로마 제국의 재건자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고대 로마 황제(재위 306~337).
별칭 : 콘스탄티누스 대제, 정식 명칭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국적 : 고대 로마
활동분야 : 정치
정식 명칭은 Flavius Valerius Constantinus.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 또는 콘스탄틴 1세라고도 불린다. 콘스탄티우스 1세와 헬레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제 퇴위 후 로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로마 제국을 재통일시켰으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인한 황제로서도 유명하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따라 갈레리우스의 페르시아 원정에 참가하였다. 306년 아버지가 죽자 황제에 추대되었으나, 정통파 황제를 자칭하고 로마시를 근거지로 삼고 있던 막센티우스를 꺾어야 했고 312년에야 정식으로 황제 지위를 얻었다. 314년부터 로마 제국 동부를 차지한 황제 리키니우스와 대립하였으나, 323년 고트인(人)의 침입을 막아낸 후 리키니우스를 격파, 제국을 통일하여 단독 지배자가 되었다.
원래 그는 태양신을 숭배하였으나 그리스도교에 깊이 경도하여 그 자신도 그리스도교가 되어 313년 밀라노에서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 칙령(勅令)을 공포,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당시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그리스도교 박해를 중지시키고 교회의 사법권, 재산권 등을 우대하였다. 또한 북아프리카 도나투스파의 분파(分派) 문제도 조정하였으며, 325년 니케아에서 종교회의를 개회하는 등 교회 내의 분쟁, 교리(敎理) 논쟁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한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정한 통치 방식을 계승 발전시켜, 문무(文武) 관직의 기능을 완전히 분리하였고, 황제고문회의의 권한을 강화하여 중요한 정치에 관여시켰으며, 황제를 정상으로 하는 계급적 관로제도를 완비하였다. 또한 상비군 제도와 변경의 둔전병(屯田兵) 제도에 의거하여 군제를 정비하였으며, 사르마티아인(人)과 게르만인을 변경지방으로 이주시킴으로써 야만족의 침입에 대처하였다.
행정적으로는 관료와 군대의 유지, 오리엔트식의 궁정조직과 의례(儀禮)형식의 채용, 대규모 건축사업 등에 대한 지출이 증대하였기 때문에 각종 세금제도(금을 납부하는 형식으로)를 신설하였고, 솔리두스 금화본위(金貨本位)로 화폐제도를 정비하게 되었다. 한편 이교적 색채를 불식한 그리스도교적인 도시로서 비잔티움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라고 명명하였다(330). 그는 군인, 통치자, 입법자로서 제1급의 인물로 꼽히고,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더불어 로마 제국의 재건자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