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고 마시면 콜라와 사이다를 구별할 수 없다.
사건의 발단은 무심코 흘린 선배의 한마디. 선배가 그랬어요. 눈 감고 마시면 콜라랑 사이다를 구별할 수 없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토론이 벌어졌지. 당연히 '설마', 하는 사람과 '그럴 싸' 하다는 사람으로 의견은 나뉘었고, 나는 그럴 싸 하다는 쪽이었음. 원체 내가 스스로 미맹임을 자처 하는 데다가 또 저런 말 들으면 왠지 믿고 싶잖아. 사실 속으로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며 빌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냥 잊었어요. 세상이 얼마나 복잡다단한데 콜란지 사이단지, 그걸 눈 감고 마시고 어쩌고, 알게 뭐람.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다 며칠 전에 피자 먹으면서 콜라를 마시다가 그 이야기가 다시 나왔어. 역시 분위기는 저번과 비슷하지. 그렇다, 아니다를 놓고 잠시 토론이 벌어졌어요. 하지만 사실 이건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거잖아. 같은 문제로 두 번 결론 없는 대화를 나누고 나니까 이건 좀 규명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사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요.
그래서 바로 다음날 1.5리터짜리 콜라랑 사이다, 그리고 몇 개의 종이컵을 사 들고 나왔다. 마침 나 말고 두 명이 더 나와있네? 그들의 도움을 빌어 바로 실험에 착수. 콜라랑 사이다가 든 두 개의 잔을 주고 콜라인지 사이다인지 맞추는 식으로 실험을 하면 결과를 신뢰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찍어도 반반이잖아. 그래서 난이도를 좀 높였지. 콜라랑 사이다 중에 무작위로 골라 총 열 번을 마시게 하면서 매번 마실 때 마다 이게 콜라인지 사이다인지 말하게 했어요. 물론 눈을 가리고요.
직접 피실험자가 돼서 실험을 해봤는데, 이거 꽤 긴장 탑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열 번을 마시는 동안 결과를 확인할 수 없게 했거든. 눈 감고 콜란지 사이단지 알 수 없는 음료를 마시며 그게 뭔지 말해야 하는 기분. 횟수가 늘어날수록 음료에 가미된 탄산과 또 그 차가움 때문에 미각은 갈수록 둔해진다. 그와 함께 엄습해 오는, 과연 나는 잘 하고 있을까 하는 두려움. 이런저런 상념이 오가는 가운데 계속 음료를 따른 잔은 손에 쥐어지죠. 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서 맛을 보고, 음미하고, 또 머뭇거림 뒤에 답을 말하고. 그 과정의 연속.
음... 마치 콜라와 사이다의 중간적인 맛이 나고요. 음... 표현을 하자면, 굉장히 찌들어 있지만 찌들어 있지 않은 풍경. 마치, 며칠 밤샘이 이어지는 컴퓨터 앞의 한 폐인, 키보드를 두드리는 폐인. 하지만, 그 폐인이 갑자기 일어나 현피 뜨러 달려가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지루하고 길다.
아무튼 총 열 번의 시음이 끝나고 나는 눈을 가리고 있던 수건을 미친 듯이 벗어 던졌지. 그리고 득달처럼 결과를 확인했다. 과연 나는 정말 미맹이었을까? 아니면 이 실험을 통해 일망의 희망이라도 갖게 되는 것일까?
결과는...
100% 적중.
다 맞춘 거야. 남들이 다 맞춰도 나는 못 맞출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내가 다 맞췄다.
의외의 결과에 대한 약간의 흥분이 지나간 뒤 일말의 아쉬움이 나를 덮쳤어요. 위에도 말했지만 나는 사실 내심 사람들이 구분을 못하길 바랬거든. 재미있잖아요.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는 게. 하지만 결국 선배의 말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서운해요. 게다가 선배의 가설을 뒤집는 데 내가 크게 일조를 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까워요.
그러나 사실 아직 모든 의구심이 다 날아간 건 아니다. 이거, 표본에 문제가 있는 실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냐? 내가 콜라에 미친 듯이 단련된 덕후 폐인이기 때문이죠. 그간의 나는 사이다는 꼬꼬마나 마시는 음료이며, 콜라만이 진정한 덕후 폐인 대인배의 음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연히 콜라를 엄청 마셔댔죠. 이번에 실험을 할 때도 이건 콜라, 이건 사이다, 하는 식으로 구별한 게 아니었어. 이건 콜라, 이건 콜라가 아닌 다른 음료, 하는 식으로 구별했거든. 그러니까 나는 콜라에 대해서는 꽤 숙련된 사람이었던 거죠. 그래서 그 둘 사이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같은 실험을 나 같은 덕후 폐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다면? 그때도 정말 대다수의 사람들이 콜라와 사이다를 눈 감고 구별해 낼 수 있을까? 이게 나는 아직도 조금 궁금해요. 이 미처 풀리지 않은 의구심에 일조를 한 게, 다른 곳에서 실험을 해봤다는 한 후배의 증언이 있었어요. 사실 그 이야기는 내가 실험을 직접 해보기 전에 들은 건데, 그 후배가 다섯 명을 대상으로 실험해봤더니 모조리 구별을 못했다는 거예요. 그럼 이거 뭔가 이상하잖아.
그래. 아직 이 미스터리는 풀린 게 아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거야.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실험해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