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해 보이지만 실은 매우 포악한 동물임. 앵커리지 공항에 그들의 본성을 잘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박제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박제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고 식겁했을 정도이며, 정말 야생에서 이런 동물이랑 맞부딪히면 죽는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음. 저런 웃는 표정과 귀여운 몸짓에 현혹되지 말자.
저번에는 상어 이야기 했었죠? 오늘은 판다 이야기야.
보통 판다라고 하면 사진에 있는 저 동물을 의미하죠. 맞긴 맞는데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저 판다는 대왕판다입니다. 영어로는 giant panda. giant를 대왕이라고 번역했네. 센스 좋다. 그러니까 개 중에 진돗개가 있고 삽살개가 있고 하듯이 판다 중에도 대왕판다가 있는 거지. 그럼 다른 판다는 뭐가 있나? 너구리판다가 있죠. 레서판다 라는 말이 더 익숙할라나?
더 우리 마음에 와 닿게 생겨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귀해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요새 판다의 대세는 대왕판다죠. 실제로 저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도 너구리판다는 완전 찬밥이더라고. 대왕판다 우리는 따로 대나무 울타리까지 쳐서 그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아요. 보통 다른 동물 우리는 열린 구조라 사람들이 지나가면서도 보고, 둘러서서도 보고 그러잖아. 그런데 판다는 아닌 거지. 울타리에 조그만 입구가 하나 뚫려있어서 판다를 보려면 거기를 통해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 줄을 서게 되죠. 내가 글쎄 판다 보려고 줄을 다 섰다니까.
그것뿐입니까? 대왕판다는 시끄러운 거 싫어한다고 울타리 안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 하게 해요. 우리 곳곳에 경고문이 붙어있는 건 물론이고, 안에 경비원이 한 명 지키고 섰어요. 그래서 조금 목소리가 크다 싶으면 조용히 하라며 무안을 줘요. 그래서 대왕판다 우리는 경건한 분위기야, 아주. 나는 무슨 대왕판다 신전이라도 되는줄 알았어.
반면에 너구리판다는. 그냥 생 철창입니다. 다른 거 없다. 그냥 지나다니면서 보는 거예요. 그 앞에서 떠들든 말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요. 너구리판다라고 시끄러운 거 좋아하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누가 자세히 보고 있지도 않아. 게다가 분류학상 배치를 해서 그리 됐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대왕판다 우리 바로 옆에 있죠.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대왕판다 보러 줄 서있지 너구리판다는 보러 안 가거든. 너구리판다도 같은 판다인데 어쩌다 저리 되었는지. 아무튼 세상은 잘 생기고 봐야 돼.
이야기가 좀 샜는데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하도록 하죠. 이유가 어쨌든 요새 대왕판다가 판다의 대명사가 되지 않았습니까? 봉고가 승합차의 대명사가 되었듯이 말이죠. 하지만 원래 판다라는 이름은 너구리판다 것이라는 거죠. 예전에 너구리 판다를 그냥 판다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거든. 그럼 그때 대왕판다는 뭐라고 불렀었느냐. 그냥 얼룩 곰이라고 불렀어요. 영어로는 mottled bear, 혹은 particolored bear. 말 그대로 얼룩 곰.
그랬다가 이 얼룩 곰이 판다, 즉 지금의 너구리판다와 사촌간이라는 게 밝혀 지면서 모든 일이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판다는 앞에 사족이 붙어 너구리판다가 되고, 그냥 얼룩곰은 대왕판다가 됐어요. 가져다 붙여도 누구는 너구리고 누구는 대왕이네? 이거는 왕위를 물려 받고 의기양양해 있는데 어디서 거지 같은 녀석이 나타나 진정한 계승자는 자기라고 외치는 바람에 냅다 쫓겨나게 된 상황이랑 비슷한 거죠. 원래 판다는 너구리판다였는데 말이지.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대왕판다 사진은 정신 없이 여러 장 찍어왔으면서 너구리판다 사진은 하나도 없다. 저 역시 보기 좋은 게 찍기도 좋더라고요. 너구리판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