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보면 묘한 지적 우월감에 젖어 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가장 흔한 경우로 원작이 따로 있는 영화 같은 걸 예로 들어볼 수 있겠다. 물론 애정이 있어서 원작도 보고 영화도 보고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좋은 거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다들 각자의 일로 바쁜 법.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냥 영화만 보러 오는 관객이 대부분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일부 원작을 미리 접하고 온 관객들이 일반적인 관객들을 상대로 괴이한 지적 우월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가까운 사례로 영화, 킹콩을 들 수 있겠다. 다들 주지하고 있다시피 이 영화는 원작 영화가 따로 있다. 게다가 이번에 감독을 맡은 피터 잭슨이 원작의 엄청난 팬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번에 개봉한 영화는 원작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 형식을 띄며 원작을 모를 경우 놓칠 수 있는 요소들도 여럿 들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원작이 까마득한 옛날인 1933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거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를 개봉에 맞춰서 본 사람은 당연히 드물거고 나중에라도 챙겨본 사람 역시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 킹콩을 처음 보는 사람 역시 상당할 거라고 본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원작을 먼저 보고 온 사람 중 일부의 가슴 속에 일종의 우월감이 움트기 시작한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관객들과는 좀 다르다는 걸 미리부터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원작을 모르고서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나올 때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반응하며 그와 동시에 주변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곤 한다. 그때 다른 관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우월감은 배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초반부에 칼 덴햄이 여배우를 섭외하는 신의 경우가 그렇다. 이때 원작의 여배우와 영화사, 감독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웃음을 주는 부분이 있다. 그 장면이 흐르고 있을 때 극장 안의 관객은 그 조크에 웃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다. 바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관객들의 머리 속에서.
일이 이 정도 선에서 그치면 다행인데 이런 사람들은 또 일부가 원작을 보지 않은 다른 관객들을 한심해하는 상황으로 까지 발전하곤 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원작도 보지 않고 이 영화를 볼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가만 생각해 보면 90분짜리 괴수영화 한편 미리 본 게 무슨 벼슬도 아닌데 말이다. 영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혹은 이왕 보는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원작을 보는 게 아니라 다른 관객들 보다 좀 더 높은 위치에 서기 위해서 그러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거 꽤 자기소비적인 행태 아닌가.
그래도 여기까지는 개인적인 문제이니 뭐 그럭저럭 괜찮다 치자. 하지만 와중에 또 일부는 더 심각한 지경에 도달하기도 한다. 원작에 완전히 경도돼서 어떠한 생산적 변용이나 발전적 변모, 작가적 해석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원작무오설에 빠진 근본주의자에 가깝다. 그들에게는 원작과 다른 어떤 것도 무조건적인 틀림에 다름 아니다. 원작과 다른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며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원작의 시대와 현재의 시대 사이에 어떠한 시간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일단 두 작품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킹콩의 경우 원작과 달리 여러 면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 여주인공, 앤 대로우를 문제 삼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런 이야기들의 주된 논지는 원작처럼 킹콩에 대한 공포 때문에 비명만 지르다 끝나는 여주인공이 아니라서 매우 안타깝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드디어 킹콩과 여주인공 사이에 형성되는 교감을 무리없이 전달하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하나의 발전으로 해석할 수는 없었을까.

끝까지 자기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실패하고 허무하게 죽어갔던 원작의 스톱모션 킹콩과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 힘입어 여주인공과의 로맨스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지금의 킹콩, 그 두 캐릭터 사이에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물론 각자의 문제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 근본주의적인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원작과 다르다는 이유로 발전이라 부를만한 것들을 비꼬는 모습을 보면 순수하다고 해야할지 답답하다고 해야 할지.

그렇게 원작이 보고 싶었으면 그냥 그걸 다시 보면 되지 않을까. 내 생각에 이와 같은 태도는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해악에 가깝지 않나 한다. 기술적인 발전은 용납되지만 그것을 토대로 꽃피는 예술적인 발전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이런 식의 태도는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원작은 어디까지나 원작이어야지 그 이상의 지위를 부여하려고 해서는 안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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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시 에고인가 이거?
가까운 사례로 영화, 킹콩을 들 수 있겠다. 다들 주지하고 있다시피 이 영화는 원작 영화가 따로 있다. 게다가 이번에 감독을 맡은 피터 잭슨이 원작의 엄청난 팬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번에 개봉한 영화는 원작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 형식을 띄며 원작을 모를 경우 놓칠 수 있는 요소들도 여럿 들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원작이 까마득한 옛날인 1933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거다. 그러다보니 이 영화를 개봉에 맞춰서 본 사람은 당연히 드물거고 나중에라도 챙겨본 사람 역시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 킹콩을 처음 보는 사람 역시 상당할 거라고 본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원작을 먼저 보고 온 사람 중 일부의 가슴 속에 일종의 우월감이 움트기 시작한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관객들과는 좀 다르다는 걸 미리부터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원작을 모르고서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나올 때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반응하며 그와 동시에 주변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곤 한다. 그때 다른 관객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우월감은 배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초반부에 칼 덴햄이 여배우를 섭외하는 신의 경우가 그렇다. 이때 원작의 여배우와 영화사, 감독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웃음을 주는 부분이 있다. 그 장면이 흐르고 있을 때 극장 안의 관객은 그 조크에 웃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다. 바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관객들의 머리 속에서.
일이 이 정도 선에서 그치면 다행인데 이런 사람들은 또 일부가 원작을 보지 않은 다른 관객들을 한심해하는 상황으로 까지 발전하곤 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원작도 보지 않고 이 영화를 볼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가만 생각해 보면 90분짜리 괴수영화 한편 미리 본 게 무슨 벼슬도 아닌데 말이다. 영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혹은 이왕 보는 영화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원작을 보는 게 아니라 다른 관객들 보다 좀 더 높은 위치에 서기 위해서 그러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거 꽤 자기소비적인 행태 아닌가.
그래도 여기까지는 개인적인 문제이니 뭐 그럭저럭 괜찮다 치자. 하지만 와중에 또 일부는 더 심각한 지경에 도달하기도 한다. 원작에 완전히 경도돼서 어떠한 생산적 변용이나 발전적 변모, 작가적 해석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원작무오설에 빠진 근본주의자에 가깝다. 그들에게는 원작과 다른 어떤 것도 무조건적인 틀림에 다름 아니다. 원작과 다른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이며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원작의 시대와 현재의 시대 사이에 어떠한 시간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일단 두 작품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킹콩의 경우 원작과 달리 여러 면에서 성장한 모습을 보이는 여주인공, 앤 대로우를 문제 삼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런 이야기들의 주된 논지는 원작처럼 킹콩에 대한 공포 때문에 비명만 지르다 끝나는 여주인공이 아니라서 매우 안타깝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드디어 킹콩과 여주인공 사이에 형성되는 교감을 무리없이 전달하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하나의 발전으로 해석할 수는 없었을까.

1933년식 킹콩
끝까지 자기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실패하고 허무하게 죽어갔던 원작의 스톱모션 킹콩과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술에 힘입어 여주인공과의 로맨스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 지금의 킹콩, 그 두 캐릭터 사이에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물론 각자의 문제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 근본주의적인 것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원작과 다르다는 이유로 발전이라 부를만한 것들을 비꼬는 모습을 보면 순수하다고 해야할지 답답하다고 해야 할지.

2005년식 킹콩
그렇게 원작이 보고 싶었으면 그냥 그걸 다시 보면 되지 않을까. 내 생각에 이와 같은 태도는 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해악에 가깝지 않나 한다. 기술적인 발전은 용납되지만 그것을 토대로 꽃피는 예술적인 발전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이런 식의 태도는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원작은 어디까지나 원작이어야지 그 이상의 지위를 부여하려고 해서는 안되지 않을는지.
원작에 혼을 뺏긴 사람들이여. 진정한 발전은 되려 원작을 파괴함으로써 얻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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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혹시 에고인가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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