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불식간에도 공학은 끊임 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써놓고 보니 당연한 사실인데 나는 이걸 요즘 아침에 면도할 때 마다 새삼스럽게 다시 느낀다.
나는 순전히 감성적인 이유로 수동 면도기를 사용한다. 물론 전동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번거롭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진짜 면도를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수동 면도기 쪽이다. 샤워 후 젖은 얼굴에 면도 거품을 바르는 것도 좋고 그 거품 위를 면도날이 지나가는 느낌도 좋아한다. 그래서 면도를 처음 시작했을 때 부터 지금까지 줄곧 습식 면도를 하고 있다.
면도를 시작한지 햇수로 따지면 8년, 9년 정도 됐나. 아무튼 꽤 오래 되었는데 그간 줄곧 질레트에서 나온 면도기를 사용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벌써 네번의 모델 체인지가 있었으니 정말 나름 오래 쓰긴 한 모양이다.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면도기에도 모델 체인지가 있다는 사실이 의아할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면 면도기라는 물건은 한없이 단순한 물건이다. 직접 수염을 깎는 부분인 칼과 피부를 다치지 않도록 날을 제외한 칼의 다른 부분을 숨겨주는 안전기, 그리고 손에 쥘 수 있도록 해주는 손잡이. 이렇게 간단한 구조를 가진 면도기가 내가 아는 동안에만, 그것도 한 회사의 제품에서만 네번의 큰 개량이 이루어졌다. 도대체 더이상 뭐 바꿀 게 있어서?
원래는 내가 바로 그런 입장에 서있는 사람이었다. 공학자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면도기에 더이상 무슨 발전이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K. C. 질레트가 현재와 유사한 형태를 갖춘 안전면도기를 발명한지 이미 백년이 훌쩍 넘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필수로 사용하게 되는 물건인 만큼 그동안 이미 수많은 개량에 개량을 거듭했을 것이다. 반면에 앞에도 말했듯이 면도기란 물건이 워낙 구조가 간단한 것이다 보니 그 개량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슬슬 면도기의 진화도 그 끝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 것은 성능 보다는 디자인에 차이를 둠으로써 물건을 팔기 위한 회사의 전략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면도기 신상품 소식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이미 질레트에서는 MACH 3 Turbo에 이어 M3 POWER 까지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MACH 3를 잘 쓰고 있었다. 이제 두세대나 지난 모델이었지만 나는 그걸로 아침마다 면도를 하는 데 있어 하등의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불편한 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의 면도가 즐겁기까지 했으니 나로서는 그 다음을 쳐다볼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잘 지내오던 어느날 사재기 해두고 잘 쓰던 면도날이 드디어 바닥 났다. 오랜만에 새 면도날을 사러 나갔는데 가게에서 보니 MACH 3 Turbo용 면도날이 MACH 3 면도기와도 호환이 되는 모양이다. Turbo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이지 별로 달라 보이는 것도 없었고 또 이미 말했듯 면도기의 진화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만 그 가게에서 MACH 3 용 면도날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MACH 3 Turbo라는 이름이 붙은 면도날을 사들고 왔다. 그렇게 새 면도날을 샀고 그걸로 면도를 했다.
그런데.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안좋은 건 줄 알지만 좀 더 깔끔한 면도를 위해 피부결과 반대방향으로 면도를 하고 또 같은 부위를 여러번 면도하곤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전 같았으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을 거북함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면도란 게 어쩔 수 없이 얼굴에 칼날을 대는 것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어느정도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말 광고 카피 그대로 너무나 부드러운 면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아닐 것 같아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공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구나, 하는.
정말 단순해 보이는 면도기라도 그 안에서 기어코 개선의 여지를 찾아내고 또 그것을 기발한 방식으로 해결해 왔을 질레트 연구원들의 모습이 한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와 함께 공학 전분야에 걸쳐 지금도 불철주야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다른 학도들의 모습 역시.
그래서 헨리 페트로스키는 '이 세상을 다시 만들자'같은 책을 썼나보다.
나는 이제서야 뒤늦게 MACH 3 Turbo를 써보고 감동받고 있지만 이미 언급했듯 질레트에서는 M3 POWER라는 제품까지 출시한 상태다. 이게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마이크로 펄스를 쏴서 수염을 깎기 좋게 가지런히 정렬해준다는 발상의 엉뚱함을 비웃었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한번 하고 나니 공학이 발전함을 믿고 한번쯤 면도기의 업그레이드를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써놓고 보니 당연한 사실인데 나는 이걸 요즘 아침에 면도할 때 마다 새삼스럽게 다시 느낀다.
나는 순전히 감성적인 이유로 수동 면도기를 사용한다. 물론 전동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번거롭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진짜 면도를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수동 면도기 쪽이다. 샤워 후 젖은 얼굴에 면도 거품을 바르는 것도 좋고 그 거품 위를 면도날이 지나가는 느낌도 좋아한다. 그래서 면도를 처음 시작했을 때 부터 지금까지 줄곧 습식 면도를 하고 있다.
면도를 시작한지 햇수로 따지면 8년, 9년 정도 됐나. 아무튼 꽤 오래 되었는데 그간 줄곧 질레트에서 나온 면도기를 사용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벌써 네번의 모델 체인지가 있었으니 정말 나름 오래 쓰긴 한 모양이다.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면도기에도 모델 체인지가 있다는 사실이 의아할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면 면도기라는 물건은 한없이 단순한 물건이다. 직접 수염을 깎는 부분인 칼과 피부를 다치지 않도록 날을 제외한 칼의 다른 부분을 숨겨주는 안전기, 그리고 손에 쥘 수 있도록 해주는 손잡이. 이렇게 간단한 구조를 가진 면도기가 내가 아는 동안에만, 그것도 한 회사의 제품에서만 네번의 큰 개량이 이루어졌다. 도대체 더이상 뭐 바꿀 게 있어서?
원래는 내가 바로 그런 입장에 서있는 사람이었다. 공학자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면도기에 더이상 무슨 발전이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K. C. 질레트가 현재와 유사한 형태를 갖춘 안전면도기를 발명한지 이미 백년이 훌쩍 넘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이 아니라 대부분의 남자들이 필수로 사용하게 되는 물건인 만큼 그동안 이미 수많은 개량에 개량을 거듭했을 것이다. 반면에 앞에도 말했듯이 면도기란 물건이 워낙 구조가 간단한 것이다 보니 그 개량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슬슬 면도기의 진화도 그 끝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 것은 성능 보다는 디자인에 차이를 둠으로써 물건을 팔기 위한 회사의 전략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면도기 신상품 소식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이미 질레트에서는 MACH 3 Turbo에 이어 M3 POWER 까지 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MACH 3를 잘 쓰고 있었다. 이제 두세대나 지난 모델이었지만 나는 그걸로 아침마다 면도를 하는 데 있어 하등의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불편한 점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날마다의 면도가 즐겁기까지 했으니 나로서는 그 다음을 쳐다볼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잘 지내오던 어느날 사재기 해두고 잘 쓰던 면도날이 드디어 바닥 났다. 오랜만에 새 면도날을 사러 나갔는데 가게에서 보니 MACH 3 Turbo용 면도날이 MACH 3 면도기와도 호환이 되는 모양이다. Turbo라는 이름만 붙었을 뿐이지 별로 달라 보이는 것도 없었고 또 이미 말했듯 면도기의 진화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다만 그 가게에서 MACH 3 용 면도날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MACH 3 Turbo라는 이름이 붙은 면도날을 사들고 왔다. 그렇게 새 면도날을 샀고 그걸로 면도를 했다.
그런데.
느낌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안좋은 건 줄 알지만 좀 더 깔끔한 면도를 위해 피부결과 반대방향으로 면도를 하고 또 같은 부위를 여러번 면도하곤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전 같았으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을 거북함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면도란 게 어쩔 수 없이 얼굴에 칼날을 대는 것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어느정도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말 광고 카피 그대로 너무나 부드러운 면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아닐 것 같아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공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구나, 하는.
정말 단순해 보이는 면도기라도 그 안에서 기어코 개선의 여지를 찾아내고 또 그것을 기발한 방식으로 해결해 왔을 질레트 연구원들의 모습이 한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와 함께 공학 전분야에 걸쳐 지금도 불철주야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다른 학도들의 모습 역시.
그래서 헨리 페트로스키는 '이 세상을 다시 만들자'같은 책을 썼나보다.
나는 이제서야 뒤늦게 MACH 3 Turbo를 써보고 감동받고 있지만 이미 언급했듯 질레트에서는 M3 POWER라는 제품까지 출시한 상태다. 이게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마이크로 펄스를 쏴서 수염을 깎기 좋게 가지런히 정렬해준다는 발상의 엉뚱함을 비웃었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한번 하고 나니 공학이 발전함을 믿고 한번쯤 면도기의 업그레이드를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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